서울역에서 여성 노숙자를 보고
오늘은 약속이 있어서 서울역 쪽에 다녀왔다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들도 많고 ‘박근혜 대통령을 풀어줘라!’하는 대규모 시위도 있었다.
지방 사는 나에게는 신기한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아무튼 그쪽을 지나가는데 아니나다를까, 특유의 냄새가 코를 쨍하게 만들었다. 노숙자였다. 광장쪽에는 항상 노숙자가 많다. 핫스팟인지, 아니면 거기 말고는 갈 곳이 없는 것인지.
노숙자 분들은 호기심 많은 나에게는 여러가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잠은 어떻게 자는지, 밥은 어떻게 먹는지, 어떤 사연인지. 저마다의 사연이 있을 것이고 한번 물어본다면 인생의 쓴맛도 간접경험할 수 있겠지만 솔직히 기자같은 신분도 아닌 이상 한 명의 개인으로서는 다가가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서울역 노숙자 분들이 쉬는 모습은 천태만상이다. 종이박스나 옷가지 등으로 작은 공간을 만들어 그 안에서 쉬는 사람, 자유인 중의 자유인으로 그냥 맨바닥에서 자는 사람, 뭐가 들었는지 모르지만 큰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사람, 웅크리고 앉아 있는 사람, 어떻게 샀는지는 몰라도 소주 열댓 병을 바닥에 깔아 놓고 낮술을 하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알 수 없는 단어와 욕을 중얼거리는 사람.
그 중에서도 오늘은 여성 노숙자를 봤다. 지금까지 봐 온 노숙자 분들은 거진 남성이었기 때문에 더 눈에 띄었다. 밝은 염색머리에 나이도 많아보이지 않았다. 웅크리고 앉아 고개를 숙이고 깊은 기침을 하고 있었다.
사연은 알 수 없으나 아무리 남이라도 여성 노숙자 분을 보니 그냥 지나가는 입장으로서도 걱정이 안 될 수 없다.
하다못해 한달에 한 번 오는 생리 때는 만 원 돈이나 하는 생리대를 어떻게 마련할 수 있나. 길거리에서 밤을 보내다 보면 성폭행 등의 위험에 직접적으로 노출되지 않나.
그래도 끝내 돈을 쥐어줄 순 없었다. 현금이 없기도 했거니와 뭣도모르고 돈을 주면 주변 노숙인에게 빼앗기고 두들겨 맞는다는 얘기도 들었고, 함부로 돈을 주면 그걸로 필요한 데에 쓰는게 아니라 소주나 사먹어버린다는 얘기도 들은 적이 있기 때문에.
물론 적극적으로 안부를 묻고 어느 시설에라도 연락할 수도 있었겠으나 무섭기도 하고 오지랖인가 싶어 아무것도 안했다.
그래도 계속 마음에 남아 여성 노숙자들이 어떻게 사는지 집에 돌아와 검색이라도 해 보았다. 그리고 나는 차라리 검새하지 말걸,하고 후회했다.
예상대로 여성 노숙자는 성폭행과 비위생적이고 강제적인 성매매에 직접적으로 노출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여성 노숙인들은 되도록이면 쉼터에서 지내도록 지원한다는데 정신적 문제나 갖은 사연으로 인해 쉼터를 나와 노숙을 택하는 사람들도 많나보다.
어떤 기자는 한 여성 노숙자를 인터뷰했는데 그 기구한 사연에 참 마음이 아팠다. 어렸을 때부터 가정불화와 폭력 등으로 정신질환을 앓아 왔고, 노숙이 장기화 됐다고 한다. 성폭행이나 추행은 거의 일상이 됐고 입에 담기도 어렵지만 임신 경험과 비례해 낙태 경험도 다수 됐다.
기자는 남성이었는데 기자가 인터뷰를 하러 다가가자마자 허벅지를 가리며 소스라치게 놀랐다는 문장이 있다. 마음이 쓰라렸다.
저마다의 인생이 가치있다고는 하나 태어난 가정에 불화와 폭력이 가득하고 쫒기듯이 길바닥으로 내몰렸다면? ‘사지 멀쩡한데 일 안하고 쯧쯧’ 하는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노숙인들의 기구한 사연이다.
솔직히 나도 만약 이런 기구한 가정사를 경험하고 정신질환을 가졌다면 길바닥으로 내몰리지 않았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남의 비참한 인생을 바라보며 내가 가진 작은 것들에 감사하고 싶지는 않다. 오늘의 경험을 통해 이런 실태에 대해서도 알게 됐으니 뭔가 봉사나 기부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예전에 대학 다닐 때 서울역 근처의 교회에서 노숙인 무료급식 봉사를 했던 적이 있다. 처음에는 정말 무서웠는데 막상 하고 보니 그들도 사람이었다.
자기 몸에서 냄새가 나서 민망하고 부끄럽고,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신경쓰는지 알고, 그럼에도 비참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힘들고, 살아온 인생이 노숙이라 갑자기 직업과 가정을 가지고 사회 속으로 들어가기가 힘든.
각자의 인생은 백 명에 백 가지 사연이 있다. 일 안하고 살려는 한심한 부류라도 욕해서도 안되고 마냥 불쌍하게 여겨서도 안될 것이다.거창한 도움은 안 돼도 그 인생의 사연에 멀찍이서나마 공감하며 마음 속으로 행운을 빌 뿐이다.
그래서 그냥 한 권의 빅이슈를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