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들이 아이를 가지게 되면 다들 말한다.
이 소중한 아기가 건강하게만 자라 줬으면 좋겠다고.
밝고 건강하게만 쑥쑥 자라라!
그래. 우리들은 아기였을 때 모두 그저 건강하고 쑥쑥 자라기만 하면 칭찬을 받는 존재였다. 모두들 우리에게 그 외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장래 희망이 뭐냐는 질문을 받았고,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덕담도 많이 들었다. 장래 희망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철모르는 아이는 으레 어른들이 좋다 하는 직업을 장래 희망으로 꼽았고 어른들은 박수를 쳤다.
내가 어렸을 적 나는 우리 어머니 아버지의 희망을 따라 장래희망을 ‘검사’라고 정했었다. 법조계에 종사하는 인물 하나 쯤은 가족에 필요하다는 우리 부모님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었다. 나는 검사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도 잘 몰랐지만 주입식으로 누군가가 내게 장래 희망을 물어볼 때면 ‘검사가 될래요!’라고 했고, 내가 크면 정말 검사가 될 줄 알았다.
다른 친구들도 별다를 것 없었다. 어떤 애는 의사가 된다 했고 어떤 애는 과학자가 된다 했다. 그 외에 가수, 대통령, 선생님, 하나같이 돈 많이 버는 전문직을 우리는 장래 희망으로 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 초등학교 중학교 때에는 외고, 과학고, 민사고 열풍이 시작되어 어린 아이들도 새벽 3시까지 학원을 다녔다. 초등학생 때부터 수1, 수2를 배우고 영어로는 토익을 공부했다.
‘송장(invoice)’라는 한글 단어를 몰라 ‘시체가 영어로 인보이스구나’ 라고 착각했던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주마처럼 더 많은 영단어를 외우고 더 많은 수학경시대회 문제를 푼 건 이유가 있었다. 학원 선생님들의 ‘너네가 특목고만 가면 서울대 연고대는 그냥 가는거야! 인생 풀리는거야!’ 라는 말 때문이었다.
순진한 초중생이었던 나에게 그 말은 ‘특목고 가면 훌륭한 사람이 되는 정규 루트에 올라서는 거야’라는 뜻으로 들렸다.
그래,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튼튼하고 밝게만 자라서는 안 되고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만 하는 존재로 변한 것이다. 부모님의 자랑이 되어야 하고, 남들보다 높이 올라서야 하는 그런 존재.
거기서 아마 생겨난 것 같다. ‘인생이란 무엇인가가 되기 위한 여정이다’ 라는 뿌리깊은 생각이.
우리는 무엇인가가 되기 위해 태어났고 그것은 훌륭하면 훌륭할 수록 좋다. 돈을 잘 벌고 명망이 높으면 좋고, 사람들이 많이 알 수록 좋다. 그러면 우리와 우리 부모님들은 삶이 윤택해지고 당당해지며 자랑스러운 어른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경주마처럼 내달려야 하고, 목적을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해야 하고, 남들과 경쟁하면서 중요한 정보가 있으면 숨기고 남을 제거해야 하고, 정말 하고싶은 것보다는 남들이 훌륭하다고 인정하는 길을 선택했다.
그 목적을 이루기 전에 인생은 미완성이었다.
그리고 그 목적을 이룬 사람들의 인생은 멀리서 보기에 너무나도 빛나 보였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인생을 하나의 트랙으로서 바라보고 있었다.
며칠 전 오랜만에 대학 동기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잘 된 애도 있고, 돈 많이 버는 애도 있으며, 남들이 알아주지는 않아도 자기가 가고싶은 길을 걷는 애도 있고,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친구도 있으며, 모든 것을 유예한 친구도 있다.
잘 된 친구는 잘 되지 못한 친구를 불쌍히 여기며 꼰대스러운 조언을 남기기도 했고, ‘너 그런거 하면 안돼, 결혼은 어떻게 하려고 그러냐’ 라는 ‘걱정의 씨앗’을 심어놓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기도 잠시 후, 잘 되어 돈을 많이 버는 친구는 자기 시간이 전혀 없어 잠도 제대로 못 잔다는 푸념을 하기도 하고 직장 자체가 돈은 잘 벌어도 40세 중반까지 남아있을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버는 돈을 족족 모아 사업이라도 구상해야 한다고 연거푸 소주를 들이켰다.
그 이야기를 시작으로 다들 삶의 무게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는데, 다양한 삶을 살고 있는 각자가 하나같이 자신의 불행을 털어놓았다.
누구는 돈은 잘 벌지만 부모님이 많이 편찮으시고, 누구는 돈은 없으나 가정이 화목하며, 누구는 결혼을 앞두고 큰 문제가 일어났으며, 누구는 대기업을 다니면서도 상사가 미친넘이라고 정신병에 걸릴 것 같다고 했다. 누구는 정말 대단한 굴지의 글로벌 기업에 들어갔는데 반 년도 못 버티고 나왔다.
다들 나름대로 훌륭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나와 세상에 부딫히며 살아온 것이, 절대 행복과는 거리가 멀었다
나는 관찰자 입장에서 생각했다.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해서 훌륭한 직장에 들어갔더니 그 속은 생각보다 훌륭하지 않고, 삶은 그 누구도 평탄하게만은 살 수 없으며, 인생은 뭐가 되기에는 너무 짧고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기에는 너무 길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인간의 존재 이유를 행복에서 찾았다. 나도 그렇다.
우리는 행복이 아니라 남에게서 주입당한 ‘훌륭함’을 위해 경주마처럼 뛰어가고 있는게 아닐까? 나의 행복이 남에 의해서 재단되고 평가된다는 것은 너무나 슬픈 일이다. 또한, 나 스스로도 남이 행복한지 아닌지를 마음대로 점수 매기고 조금이라도 트랙에서 벗어난 사람을 ‘이렇게 살아야 돼’ 라면서 트랙 위로 되돌려 놓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막상 내 친척 아줌마를 보더라도, 모아놓은 돈은 하나도 없어서 치아 치료도 제대로 못하면서 아파트 이웃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바오바오’ 가방을 들겠다고 60만원을 썼다.
또 건너건너 아는 사람은 공부는 줄곧 탑 클래스로 잘 해 왔지만 석사 때부터 정신의 문제가 생겨 몇년 째 사회 활동을 못 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고생고생해서 성공을 거뒀지만 공허감에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다 이뤘다’하는 순간에 암에 걸려 슬프게도 운명을 달리하기도 한다.
인생은 누구에게나 단 한 번 뿐이기에 자신에게 정말 행복이 뭔지, 그리고 누군가의 행복을 마음대로 짓밟으며 침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매일매일 잘 생각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남을 해치고 나를 억누르기에는 인생은 너무나도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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